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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의 역사와 변화 - 가난한 선비들의 동네에서 글로벌 관광지까지

서울 명동 거리 풍경 서울 명동 거리 풍경

아마 한국 여행 오시면 명동은 꼭 한 번쯤 가보시게 될 거예요.

쇼핑할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무엇보다 길거리 음식 먹는 재미가 쏠쏠하죠.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외국인 분들이 많아요.

가끔은 여기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명동은 왜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가 됐을까?”

“외국인들은 왜 명동을 좋아할까?”

오늘은 그런 궁금증을 풀어보는 시간!

명동의 역사와 변화를 함께 살펴보고,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봐요.


🟡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들의 동네

옛날 명동 풍경 옛날 명동을 멀리서 바라본 모습

명동은 원래 ‘명동’이라는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명례동’이라고 불렸어요.

옛 서울의 수도인 한양의 중심인 북촌과는 달리,

명동은 남산을 등지고 있는 지형이었기 때문에 풍수지리상 주거지로는 좋은 입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권세 있는 양반들은 주로 북촌에 살았고,

이곳 명동에는 몰락한 양반이나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선비들이 자리를 잡았어요.

즉, 명동은 가난한 선비들과 서민들이 모여 살던 조용한 주택가였던 거죠.

그런데 이 명동에

한국 천주교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

바로 ‘명동성당’이 세워집니다.

명동성당 옛날 모습 명동성당의 옛날 모습

1898년에 건립된 명동성당

한국 천주교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명례방 공동체’가 처음 생겨난 장소에 지어진 성당입니다.

즉, 명동은 조선 후기 천주교 신앙의 출발점이자, 종교적으로도 역사적인 공간이었던 거예요.

지금도 명동 중심에 당당히 서 있는 이 성당은

명동이 단순한 쇼핑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 형성과 상업지구화

일제강점기 명동 풍경 일제강점기 시절 명동의 모습

그러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 지역에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명동은 점점 상업지구로 변모합니다.

당시 명동은 ‘명치정(明治町, 메이지초)’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고,

은행, 상점, 극장 등이 들어서며

지금의 을지로, 충무로까지

일본 상인과 금융기관이 몰린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어요.


🟡 광복 이후: 명동이라는 이름의 탄생과 전후 재건

광복 직후의 서울 풍경 광복 직후

일본으로부터 해방 후인 1946년,

‘밝을 명(明)’과 ‘골짜기 동(洞)’을 따서

지금의 ‘명동(明洞)’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있었지만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명동 성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들이 파괴되었죠.

전쟁이 끝난 뒤,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예술가와 문인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서

명동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명동심지다방 명동의 대표적인 다방, 심지다방

그들과 함께 다방, 주점, 공연장이 하나둘 생겨나며

명동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 1960~80년대: 패션과 문화의 거리

1970년대 명동 거리 풍경 1970년대 명동의 거리 모습

1960~80년대 명동은

서울 젊은이들의 패션, 음악, 문화를 이끄는 거리였어요.

1970년대 명동 패션 1970년대 명동의 패션

지금으로 치면 일본의 하라주쿠나 시부야 같은 느낌이죠.

배우, 음악가,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던

카페, 소극장, 영화관이 즐비했고,

그 시절 명동은 젊음과 자유, 창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

그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명동을 둘러보다 보면 과거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어요.

(이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명동예술극장’이에요.)

또, 당시에는 오디오 상점들도 매우 많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1970~80년대 명동의 명물, 부루의 뜨락 부루의 뜨락(1970~80년대 명동을 대표하던 오디오점)

남아 있는 가게들은 주로 K-POP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 명동은 어떻게 외국인 관광지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명동은 어떻게 외국인 관광지 1순위가 되었을까요?

보아 넘버원올드보이겨울연가
보아 - 넘버원올드보이겨울연가
2000년대 K-POP의 시작2003년 한국 영화의 전성기2002년 한류 드라마의 대표작

1990년대 이후,

K-POP,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졌고,

그에 딱 맞는 곳이 바로 명동이었습니다.

쇼핑, 화장품, 길거리 음식, 면세점, 환전소까지

여행자가 필요한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여 있었고,

무엇보다 남산, 서울역, 종로, 광화문 같은

주요 관광지들과도 가까워서 짧은 여행 기간 동안 ‘한국을 경험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떠오른 거죠.


🟡 코로나 이후의 명동

코로나19 시기, 한산했던 명동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텅 빈 명동 거리

그렇게 붐비던 명동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엔 텅 비어버렸습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거리는 한산했고, 외국인도 거의 볼 수 없었죠.

하지만 코로나가 끝난 지금,

명동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거리 곳곳에 새로 생긴 가게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 현재의 명동

서울 명동 거리 풍경 서울 명동 거리 풍경

지금의 명동은

새로움과 옛 감성이 공존하는 공간이에요.

한쪽엔 트렌디한 브랜드 매장과

글로벌 패션, 화장품 매장이 줄지어 있고,

다른 한편엔

100년 넘은 명동성당,

명동예술극장,

작은 골목 속 오래된 식당과 가게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명동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큰 거리뿐만 아니라 골목골목도 꼭 걸어보세요.

숨겨진 명소와 진짜 명동의 매력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 마무리

명동은

조선시대 주택가에서, 일제강점기의 상업 중심지, 그리고 지금의 글로벌 관광지로 끊임없이 변해온 곳입니다.

그 변화의 흔적을 알고 나면,

명동은 단순한 쇼핑 거리를 넘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인 곳이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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